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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지기
당신의 문화는 어디에서 숨 쉬고 있나요
이전 세대와 우리 세대가 그러했듯 지금, 어쩌면 그 다음 세대에게까지 홍대 거리는 특별한 공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류와 비주류 문화가 한데 섞여 있는 공간. 오늘날 홍대 일대는 더 이상 예전의 홍대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홍대를 들르게 되면 우리는 여전히 골목 구석구석을 기웃거리게 된다. 그러다보면 여전히 저마다의 색깔로 조용하게 빛을 내는 사람들과 마주치기 마련이다. 홍대 거리는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이 긴 생명의 한 가운데에는 생활창작가게 <key>가 있었다.
처음으로 홍대 앞 놀이터, 프리마켓을 방문했던 날이 생각난다. 아직 교복을 입던 나이었다. 큰맘 먹고 서울 나들이를 나갔다가 우연히 마주친 풍경은 생소했다. 당시 내 눈에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아 더 이상 착용하지 않은 예쁜 액세서리를 파는 정도로만 보였다. 프리마켓이 무엇인지도 인지하지 못한 때였다. 하지만 그날 오후의 더운 공기와 노을이 지기 시작한 홍대의 하늘은 오래도록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엄마가 기다리고 있을 저녁 식탁과 군것질을 하느라 진즉에 비어 있는 지갑은 모른 척, 생에 처음으로 만난 ‘우리들의 시장’을 구경했다. 그리고 먼 훗날 대학생이 되면 나도 저들 틈에 낄 수 있는 걸까 어렴풋이 기대했던 것 같다.
우리 곁을 스쳐가는 예술가들 그런데 아무래도 공원에서 진행하는 열린 마켓이다 보니 창작자들이 판매할 수 있는 제품의 형태에 한계가 생기더라고요. 의도하지 않게 소비자들의 구매 품목을 한정짓는 것 같아 내심 안타까웠어요. 특히 그림이나 조형물은 더욱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려운 상황이었죠. 그래서 결국엔 창작활동 자체를 포기하고 현실로 돌아가는 분들이 많았어요. 이들을 다시 한 자리로 모이게 만들고, 무엇보다 거리에서 판매되는 상품이라는 이유로 창작품이라 인식하지 못하는 시선도 바로 잡고 싶었죠. 이런 문제의식이 반영된 <key>1호점은 프리마켓 문화를 어느 정도 안정화시킨 뒤 오랫동안 기획해 온 숙원사업의 결과물이에요.” 그저 자신의 손끝에 깃든 소질을 살려 벌어먹고 살고 싶을 뿐인데 그 길이 너무 좁은 것이다. 대학에서 공예를 전공한 이상미 과장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프리마켓을 창작자의 자격 대신, 자원봉사자로 접하면서 졸업 후 본격적으로 운영과 관련된 일을 도맡게 되었다고. “저는 붓을 꺾은 지 오래 돼서 개인 작업에 대한 욕구는 이제 희미해졌죠(웃음). 그래서 반짝이는 열정이 눈에 보이는 작가들을 보면 반가워요. 그리고 프리마켓 초창기부터 마켓의 발전과정을 지켜온 사람으로서, 지금은 전국적으로 프리마켓의 활성화뿐만 아니라 <key>와 같이 핸드메이드 제품을 취급하는 소규모 가게들이 많아지고 있어 뿌듯해요. 그 당시 제가 바랐던 것처럼 자신이 하고픈 일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들이 조금씩 제 그림을 완성시키고 있으니까요. 물론 아직도 부족하고 해결할 문제들이 많지만, 오늘을 맞이하기까지 우리가 쏟은 노력들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하면서 위로받고 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