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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지기
1와트로 전하는 '희망의 시그널'
수년 전, 전자책이 등장했을 때 출판업계는 종이책의 종말을 예측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매거진을 만들고 있다. 뉴미디어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일제히 라디오의 종말을 이야기했다. 하지만 라디오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라디오 전성시대를 그리워하며 추억에 잠기곤 한다.
“…사실 우리는 그들의 서비스와 인력을 이용할 뿐이지 돈을 지불한다고 해서 그들의 인격까지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죠. 그런데 자본주의가 기본이 되는 지금 우리 사회는 돈을 받고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너무나 자발적으로 ‘을’이 되어야만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미와 신념을 갖고 스스로의 일을 한다는 것. 그래서 생기는 만족과 즐거움으로 한 번 더 짓게 되는 웃음과 언제나 친절해야만 하는 입장이기에 연습된 미소. 우리가 정말 더 기분 좋아지는 웃음은 어느 쪽일까요? 결국, 우러나는 마음이지 않을까요?” DJ의 오프닝 멘트가 끝나자마자 부스 안 ‘온에어’ 불이 꺼진다. 오프닝 송이 흘러나오고 기다렸다는 듯 DJ와 패널의 담소가 이어진다. 마포구 주민 윤은주 씨는 마포FM의 금요일 오전 방송 <마포수다방>의 고정 게스트다. 혹시라도 목소리가 새어 나갈까 조심스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에 기자도 덩달아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약속돼 있던 3명의 게스트가 개인 사정상 1명으로 줄어들어 담당 PD도 헤드셋을 쓰고 코너 진행에 나섰다. “20초 남았습니다. 10초 남았습니다. 5, 4, 3, 2, 1.” DJ의 인사 후 본격적인 코너 진행에 앞서 청취방법 소개는 은주 씨의 몫이다. 매끄럽진 않지만 또박또박한 말씨도 잠시, ‘오랜만에 읽어서 틀려버렸네’라는 은주 씨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그대로 흘러나가 버렸다. 지역 주민과 호흡하는 공동체 라디오만의 매력이랄까? 모두가 그저 숨죽여 웃음을 참을 뿐이었다. 2016년 1월 15일 55번째 <마포수다방>의 주제는 ‘의외의 인연’이다. 사람들이 라디오를 사랑하는 이유는 낯선 목소리 한 줄이 가쁜 일상을 비집고 들어와 생각할 틈을 만들어주기 때문인 듯하다. 그동안 나를 스쳐 지나간 인연들을 회상하며 가만히 귀 기울여 보았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마포FM은 공동체 라디오다. 지역라디오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공동체라는 해석이 더욱 적합한 이유는 해당 지역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한 개의 기초 지자체를 방송권역으로 삼고 있는 작은 라디오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송덕호 마포FM 본부장은 마포FM의 목적을 지역의 마을공동체를 활성화시키기 위함이라고 밝혔다. “저희 방송국은 지역의 크고 작은 소식과 주민들의 활동, 그리고 우리 지역이 갖고 있는 문화생활을 다루고 있는 만큼 지역 주민들의 제작 참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10년 전 당마포FM시 마포 지역의 자치단체들이 23개 정도 활동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자발적으로 추진회를 꾸리고, 마포구청과 서강대학교로부터 컨소시엄을 받아내 마침내 마포FM이 탄생되었어요. 지방자치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의 사회구조를 작게나마 변화시키고자 첫 발을 내딛었던 순간이었죠. 여전히 국가적인 소식에만 집중하는 대형 매체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역의 매개체 역할을 하면서도 사회적 소수자들의 작은 목소리를 담는 공간이 되고자 했죠. 사실 아직도 장애인이나 성소수자들은 물론, 여성과 노인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실상을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자리가 많이 부족하잖아요. 우리 라디오 안에서라도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도록 이끌어 나가고 있습니다.” 송덕호 본부장은 마포FM 대표이기 이전에 미디어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소속돼 있었다. 또 한 명의 마포구 주민으로서 평소 누구보다 지역 미디어의 필요성을 체감했다고. 그는 국내에 공동체 라디오 도입 소식을 접하자마자 지역에 발 빠르게 제안했던 시절을 회상했다. “마포FM은 방송통신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서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방송국이에요. 다만 마포 전역만이라도 들리면 좋겠는데 마포구의 4분의 1정도만 출력되기 때문에 방송 광고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죠. 따라서 라디오를 수익모델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에요. 라디오PD 양성이나 사회적기업 경영론 등의특강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운영비를 자체 조달하고 있어요. 이밖에도 기부금과 후원금이 30% 정도 차지하고 있답니다.”
적나라한 수치 앞에서 어쩐지 씁쓸해지는 기분도 잠시, 그럼에도 마포FM의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또 다른 지표가 들려왔다. 마포FM 제작에 고정적으로 참여하는 분들만 120명에 달하며, 방송을 후원하는 이들 또한 250명이나 된다고. 송덕호 본부장은 이들이야말로 실질적으로 방송국을 지탱하는 분들이라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개국과 함께 방송활동가를 모집했던 당시 손을 내밀었던 100여 명이 10년의 세월을 꾸준히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저희 방송국이 타 공동체 라디오에 비해 활성화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더라도 주민들과 함께 하려는 노력들이 수반되고 있죠. 가령 매주 좋은 책 한 권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면 지역 도서관과의 협업을 먼저 제안해 보는 거죠. 심지어 방송국의 의사결정에 있어서도 방송에 가담하는 분들과 선택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모두와 한자리에서 공유할 수 없는 부분은 과정들을 별도로 공개하기도 하죠. 처음부터 참여자들의 자율성을 지향해 온 시간들이 저희 방송국의 특징이자 강점으로 자리 잡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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