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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 이고은 작가 작성일 : 08.15(화)
written by Editor 김미현 photo by 김인철 hit:149

런닝맘


 

대한민국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이고은 작가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신조어다. 하지만 요즘은 직장에서 돈 버는 남편과 달리 카페에서 아이들과 노는 엄마 혹은 육아를 하는 엄마들을 싸잡아 ‘맘충’이라 부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쩌다 엄마가 ‘벌레’로 불리게 됐을까? <요즘 엄마들>이라는 책을 통해 ‘엄마’에 대한 잘못된 사회의식을 꼬집은 이고은 작가는 “직장맘이냐, 육아맘이냐를 떠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 여성의 삶이 가부장적 구조에 갇힌 현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출산과 육아가 비인간적이고 상업화되는 현상, 육아를 전적으로 엄마의 책임으로 인식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 등이 개선돼야 한다”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Written by 김미현 Photo by 김인철


 

지난 90년대를 전후로 우리나라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매우 활발히 이뤄졌다. 학력이 높아졌고, 나라 혹은 기업에서 주요 요직을 맡는 사례도 늘었다. 하지만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엄마’라는 이름을 갖게 됐을 때, 그동안 공들여 쌓았던 일과 아이 사이에서 저울질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력단절여성을 지칭하는 ‘경단녀’라는 말이 시작된 것도 딱 이맘때부터다.
“81년생인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우리 세대 여성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학창시절과 마찬가지로 사회의 리더, 자기 분야 전문가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자랐어요. 우리 어머니 세대와는 다르게 가족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죠.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이를 키우며 일을 지속하기 어렵고, 경력은 단절되고, 여성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어요.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들 하지만, 여성의 삶을 결정짓는 사회구조적 요소들은 그대로죠. 지금 엄마들의 모습을 본 이전 세대의 여성들이 ‘우리 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놀랄 정도예요.”

 

엄마는 슈퍼우먼이 아니다
‘육아와 돌봄은 부모 공동의 책임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책은 공동책임을 뒷받침 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설계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하는 노동일 때 삶은 빛납니다.’ 지난 대선 후보였던 정의당 심상정 대표의 대선 공약 1호, ‘슈퍼우먼 방지법’은 많은 여성의 지지를 받았다. 하나 틀린 말이 없다. 여전히 대한민국 엄마들은 출산과 육아에서 속된말로 ‘독박’을 쓰고 있고, 슈퍼우먼이 되길 강요받고 있다. 하지만 슈퍼우먼으로 사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학창시절 학생 대표를 도맡아하던 똑똑한 아이, 10년 넘게 주요 일간지의 촉망받던 기자로 일했던 이고은 작가 역시 1년 전, ‘육아맘 vs 워킹맘’ 그 사이에서 고심 끝에 ‘육아맘’을 택했다. 일도, 육아도 잘 해내는 슈퍼우먼이 되고 싶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무엇보다 출퇴근 시간에 맞춰 장시간 어린 아이를 기관에 맡겨야 하다보니 ‘아직 말도 못하는 아이인데 밥은 잘 먹는지‘, ‘엄마 없이 낮잠은 잘 자는지’ 등 아이가 계속 신경쓰여 오롯이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덕분에 아이가 태어나고 몇 해 동안 그녀는 기자로도, 엄마로도 모두 균형이 깨진 삶을 살아야만 했다.
“‘육아맘’을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가 없는지를 ‘Yes or No’ 중 하나로 답해야 한다면 제 대답은 ‘NO’예요. 불가피하게 어린 나이에 보육기관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어릴 때는 가정에서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이에게 더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육아맘과 워킹맘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신다면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부터 생각해보세요. 주변에서 보면 아이가 중요하긴 하지만 일을 놓고서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하시는 분들은 결국 다시 일을 찾게 되더라고요. 반대로 일도 중요하지만 아이와의 시간이 더 소중하다 생각하는 분들은 다시 사표를 쓰게 되고요. 양쪽 다 경험해보니 어떤 선택을 하든지 장·단점이 있다는 것, 그게 현실인 것 같아요.”

 

‘육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 먼저
그렇다면 엄마들이 일과 아이 사이, 이 저울질을 멈추려면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이고은 작가는 노동문제와 보육문제, 크게 두 가지를 지적했다. 먼저 노동시간이 너무 길어 양육자가 일과 육아를 양립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고 꼬집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일하는 시간이 길다 보니 퇴근을 한 뒤 아이와 충분히 시간을 보낼 수 없는 것이 현실이죠. 육아 휴직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여건이 못 되는 경우도 많고요. 더 큰 문제는 경력이 단절된 후 시장에 재진입할 때인 것 같아요. 지금 대한민국의 노동환경은 일하는 엄마를 조직에서 밀어내기 위한 구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원이 부족해요.”
보육환경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좋은 보육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기는커녕, 맡아주는 곳만 있어도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지금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질 좋고 믿을 만한 국공립 보육시설이 더 많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이고은 작가의 생각이다. 육아휴직 기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복직할 때 자리가 없을까봐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아이들을 죄다 입소시키는 엄마들, 보육의 질을 논하기는커녕 아이를 보육기관에 보내려고 ‘자리쟁탈’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 엄마들이 아이를 맡기고 싶을 때 언제든 골라서 보육기관에 보낼 수 있도록 말이다.
“당장 엄마들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아빠들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도 중요해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빠들이 엄마가 육아의 ‘주 양육자’이고, 자신은 ‘보조 양육자’로서 도와준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데 있어요. 본인 스스로를 ‘주 양육자’로 생각하는 인식의 변화만으로도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낼 수 있거든요. 한 가지 더 바람이 있다면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육아나 출산을 경험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부모교육이나 육아교육이 생겼으면 좋겠어요.(웃음)”


 

‘엄마’라는 이름으로
최근 이고은 작가는 아이들이 잠든 저녁 시간을 활용해 프리랜서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하고 있다. 5살, 3살 두 아이와 늘 붙어 지내다 보니 24시간이 모자라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들>이 사표를 내는 것으로 끝나는데, 너무 허무하다고 느끼는 독자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이후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사표 쓴 엄마의 비판적 유아 에세이’라는 매거진을 운영하고 있어요. 또 한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의 시사 팩트 체크 코너에 정기적으로 출연하고 있고요. 잠도 부족하고, 힘들긴 하지만 앞으로도 일을 할 수 없다는 현실에 낙담하기보다는 작은 일이라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찾아 할 계획이에요. 꼭 직장인이 아니더라도 찾아보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을까요.”
개인적인 도전과 더불어 엄마가 된 이후 그녀가 느낀 사회의 모순을 바로 잡고자 시작한 일도 있다. 바로 ‘정치하는 엄마들’이라는 비영리단체 모임이다.
“장하나 전 국회의원이 <한겨레신문>에 연재하는 ‘엄마 정치’를 계기로 시작하게 된 모임인데, 육아 당사자인 부모들이 정책과 법을 만드는 당사자로 논의 테이블에 올라가야 제대로 된 제도가 만들어지고 시행될 것이라는 데 공감대를 갖고 있죠. 앞으로 정기적인 총회를 통해 문재인 정부의 국민 정책 제안 프로젝트 ‘광화문 1번가’에 정책제안도 하고, 국회 앞 기자회견도 하는 등 실질적인 제도 변화와 정치적 움직임을 이끌어내는 활동을 할 계획이에요. 저희의 작은 활동들이 사회에 영향을 미쳐 언젠가는 저와 같은 ‘육아독립군’도 안정되고 대우가 좋은 일자리에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으로 함께 움직이면 우리 아이들이 부모가 됐을 때는 더 나은 세상,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요.(웃음)”
‘헬조선’을 자조하는 한국 엄마들은 북유럽 국가들을 가장 이상적인 곳으로 꼽는다. 북유럽의 엄마들은 아이를 낳고도 계속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그렇지 못한 여성들을 오히려 이상한 시선으로 본다. 많은 엄마들의 바람처럼, 우리 사회도 북유럽처럼 여성이 엄마가 된다고 해서 인생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무언가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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